사고물건
w. 밀빵
하여간에 이 동네는 사건사고가 너무 많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오랜만에 들르는 건데도 변한게 없어.”
쿠로하라는 피가 묻은 셔츠를 자켓 안쪽으로 숨기고 뺨에 튄 피를 닦으며 가볍게 툴툴거렸다. 흐트러진 모자를 고쳐 쓴 뒤 괜히 땅을 툭 차며 입을 연다. –내가 아무리 오랜만에 왔다지만 말이야.
“환영인사 치고는 좀 거칠잖아 안 그래?”
“베이커가의 범죄율이 타 지역에 비해 유의미하게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는건 아닌데요.”
“정말로? 내가 보기엔 일본에서 이렇게 위험한 동네도 없는데. 어딘가에 수상쩍은 탐정이라도 살고 있는 건지 원. 가능하면 경찰하고는 안 엮이고 싶다고.”
쿠로하라가 체감하기에는 이만큼 별별 일이 다 일어나는 곳도 드물었다. 업무 상 여러 나라를 전전하며 특별히 치안이 좋지 않은 곳에 머무는 일도 다반사였지만 그런 것들을 감안해도 이 마을은 유독 수상쩍은 데가 있다. 거리의 분위기가 흉흉하거나 나돌아 다니기 위험하거나 그런 것은 결코 아닌데 큰 사건이 터지고 보면 그 중심에 꼭 이 동네가 있달까.
“그러니까 앞으로 접선장소에 이 동네를 고르는건 다시 생각해 보라고. 너도 괜히 귀찮은 일을 만들고 싶은건 아니잖아?”
하긴 지금도 범죄조직 간부 두 사람의 밀회에 절찬리 이용되고 있으니 치안이 나쁘다는 말도 틀린건 아닌 것 같기는 했다. 쿠로하라가 농담처럼 던진 말에 후루야는 마찬가지로 엉망이 된 옷자락을 툭툭 털더니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딱히, 예전에 살던 집 근처에 놀러온다고 이상한 일도 아니잖아요.”
뭐 그것도 그렇기는 했다. 후루야가 부탁한 정보를 구했다고 했더니 접선 장소로 이 마을을 지정해온 것에 딱히 반대 없이 얌전히 나온 것도 그 비슷한 판단 하에서였다. 다른 곳에서 접선했다가 발각 당해 무슨 일로 만났냐고 추궁 당하는 것보다는 그냥 차라리 예전에 살던 동네에 산책 겸 놀러왔다고 우기는게 마음이 편했다. 실제로 이미 한번 떠난 장소에 추억 삼아 놀러올 성격은 아니었지만 적당한 변명거리는 되리라.
“게다가 이 동네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면서.”
“뭐 그렇지. 그야 여기가 싫지는 않거든. 마음에 드는 곳이니까. 괜찮은 휴식처였고.”
하지만 도착하자마자 도주중인 강도단과 조우해 휩쓸린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두 사람 다 지금 남의 눈에 띌 생각이 없었기에 적당히 피해가려 했으나 하필 타이밍이 안좋았다. 궁지에 몰린 강도단이 건장한 성인 남성 두 사람을, 그것도 일반인이 아닌 인간들을 인질로 잡으려 들었던 것이다.
괜히 얽혔다가 사정 청취니 뭐니 하는 일에 끌려 다니고 싶지 않았고 감시카메라도 없는 골목이다 싶어 살짝 단호하게 손을 썼더니 그 과정에서 약간의 일방적인 유혈 사태가 일어나고 말았다. 물론 그쪽은 후루야와 쿠로하라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했을 테고 유혈사태라고 해봤자 피만 좀 흘리게 했을 뿐 대단한 부상을 입힌 것도 아니니 이 이상 이 일에 엮여들 염려는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괜히 귀찮은 일에 휘말렸던건 확실했다.
“괜찮겠어? 그 놈들, 도망쳤잖아.”
“내기 처리할 일은 아니니까요.”
“다른 사람이 해결해 줄거라고 믿는 말투네.”
“그야 일본 경찰은 우수하거든요.”
그것보다는 뭐랄까, 개인적으로 믿는 구석이 있는 듯한 말투였지만 쿠로하라는 면전에서 상대의 비밀을 캐는 타입보다는 암약하는 타입에 더 가까웠기 때문에 구태여 캐묻지 않고 슬쩍 넘기기로 했다. 어차피 떠보기에 쉽게 걸려들 만큼 쉬운 상대도 아니었고 지금 당장은 후루야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 마을에 숨겨둔 후루야의 비장의 패가 무엇이든 지금 중요한 일은 아니다.
“그럼 이건 네가 책임져 줄 거야?”
그 대신 남의 피가 묻은 셔츠를 들어보이자 후루야가 살풋 미간을 찌푸렸다.
“책임이라면?”
“추가수당을 달라는 말인데.”
“…하, 뭘 원하는데요?”
후루야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물었고 쿠로하라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밥 만들어줘.”
*
이 방에 다른 사람을 들이는건 흔치 않다. 한가하게 노닥거릴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신분을 위장하기 위해 빌린 집인 이상 꼭 필요한 일이 아닌 한 사람의 출입을 최소화 하는건 당연한 일이다.
“하로!”
그런 이 집에 가장 많이 들락거린 사람이 있다면 그건 놀랍지 않게도 이 남자다. 아무로 토오루로서의 지인도 후루야 레이로서의 지인도 아닌, 굳이 따지자면 메종 모쿠바에 한정된 지인이라고나 할까. 뭐 그것도 지금에 와서는 조직의 인간관계에 제일 가까워지기는 했다.
“이 귀여운 녀석, 그래그래, 응, 나도 보고 싶었어…”
꽤나 오랜만인데 하로는 냄새를 맡는 것도 없이 바로 쿠로하라를 알아보고 신이 나 바짓단에 달라붙었다. 헥헥대는 숨소리와 신나서 흔들리는 꼬리가 오랜만에 만난 쿠로하라를 얼마나 반가워하고 있는지를 증명했다. 저렇게나 좋아하다니 주인으로서는 좀 미묘한 기분이기는 하지만 한때 하로를 자주 맡겨 신세를 졌던 자각이 있는 터라 그런 티를 낼 수는 없었다. 그때는 정말로 큰 도움이 되었으니까.
“여전히 있는 것도 없는 방이네.”
“씻고 와요.”
주변을 휘휘 둘러보다가 그렇게 얄미운 소리를 하는 것을 가볍게 흘려 넘기며 여분의 옷을 꺼내준 후루야는 쿠로하라가 욕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하로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냉장고를 열어 무슨 식재료가 들었는지를 확인했다. 다행스럽게도 어제 막 장을 보았던 참이라 식재료가 모자랄 일은 없을 것 같았다. 후루야는 곧장 재료를 꺼내 식사 준비를 시작했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먹어야 한다. 돌봐주는 사람 없이 한명의 어른으로서 혼자 살아가기 위해 어느 정도 요리를 해야하는건 당연한 일이었지만 시간이 지나 정말 말 그대로 혼자 살아가게 되었으니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결국 옛 친구들에게 배운 기술들은 그 친구들이 없어졌을 때에야 유의미하게 쓰이게 됐다. 설령 그게 전직 옆집 주민이자 현 범죄조직 직장 동료에게 식사를 차려주는 일이라고 해도 말이다.
생각해보면 우스운 일이었다.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은 곧 상대를 신뢰한다는 의미다. 혹은 상대가 무슨 짓을 해도 감수하겠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냥 옆집 주민이었다면 식사에 이렇게까지 깊은 생각을 하지는 않겠지만 불행인지 아닌지 그냥 옆집 주민이라고 생각했던 남자는 조직원, 그것도 간부 중 하나였고 후루야는 남이 주는걸 함부로 먹어서는 안 된다고 남들보다 더욱 확실한 교육을 받아온 사람이었다. 자신보다 훨씬 오래 뒷세계 생활을 해온 듯한 쿠로하라 또한 그런 쪽에 예민하면 예민했지 둔하지는 않을 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로하라는 간혹 일부러 둔해 보이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는 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자면 그건 의식적으로 조직과 자신을 분리하려는 시도였을 것이다. 그래서 후루야도 깨닫는게 늦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쿠로하라의 속내를 전부 알 수는 없겠지만, 휴식처라는 단어에는 조금 공감한다. 사건사고가 많은 동네지만 이곳은 이상하리만치 편안하니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후루야는 관성적으로 손을 놀렸다. 다시마로 국물을 낸 된장국에는 두부를 넣는다. 계란말이는 살짝 달콤하게 만들고 어제 사둔 정어리를 굽고 있자니 너무 이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욕실 문이 덜컥 열렸다.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어?”
문 앞에 앉아있던 하로가 쿠로하라의 발치를 둥글게 뛰어다녔다. 까만 곱슬머리가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축축하게 젖은 머리를 한 쿠로하라는 쪼그려 앉아 양 손으로 강아지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었다. 하로가 신이 나서 왕왕 짖었다.
“많이 심심했나본데.”
“놀아주는 사람이 없어졌다는걸 저 애도 알았겠죠.”
후루야는 저도 모르게 살짝 쏘아붙이듯 말했다. 저 남자가 멋대로 정을 붙이게 한 것에 대해 강아지에게 일말의 죄책감이라도 느낄지 모르겠다. 처음부터 대놓고 하로를 공략하며 강아지의 관심을 끌려고 애쓰던게 눈에 선했다. 지금에 와서 그때의 행동들이 어디까지 의도되었던 것인지를 추측하려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은 정말로 하로를 좋아했던 것인지 처음부터 다른 의도가 있었던 것인지 궁금했기도 했다.
어쨌거나 지금 하로를 좋아하는건 정말인 것 같지만. 하로는 보기보다 훨씬 똑똑하니까 누가 자기를 좋아하는지 아닌지 확실히 구분하고.
“으음…”
쿠로하라는 낮게 신음하더니 하로를 들어올려 다리 위에 올려주었다.
“그건 미안한 짓을 했네.”
“그런가요?”
“그게, 베란다도 다시 막았지? 익숙했던게 없어지면 역시 허전할 텐데말야.”
“난 처음부터 딱히 안 내켰어요. 하로야 좋아했지만.”
미안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정말 진지하게 미안해서 하는 말은 아닌 것 같았다. 후루야는 시큰둥하게 대꾸하며 프라이팬에 기름칠을 하고 계란물을 부었다. 쿠로하라가 이쪽을 쳐다보며 작게 웃었다.
“놀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심심했으려나?”
드물게도 놀리려고 일부러 하는 말인게 대놓고 드러났으나 대답할 가치가 없었기에 후루야는 입을 다물고 대신 그릇에 담은 간 무를 내밀었다.
“뭐야 이건?”
“모릅니까? 무는 핏자국을 지우는데 좋아요. 그 셔츠, 버릴건 아니잖아요?”
“그야 그렇기는 한데… 역시 별 걸 다 알고 있네.”
아무튼 고마워. 하고 쿠로하라는 무와 벗어둔 셔츠를 들고 욕실로 사라졌다. 후루야는 만족하고 다시 식사 준비를 시작했다.
셔츠의 핏자국을 깔끔히 지우는데 성공한 쿠로하라가 돌아오고 후루야도 준비를 마치고 나니 딱 저녁을 먹기 알맞은 시간이었다. 접시와 그릇에 계란말이와 국을 담은 뒤 어제 만들어 둔 토란조림을 꺼내고 갈아둔 무를 정어리와 함께 내놓자 금방 그럴듯한 한상이 됐다. 갓 지은게 아닌 냉동해 둔 밥이라는게 약간의 아쉬운 점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로 몫의 식사를 꺼내준 뒤 두 사람은 함께 식탁에 마주 앉았다. 된장국을 한 입 머금고 살이 통통하게 오른 정어리를 무즙과 함께 입 안으로 가져가자 그제야 식었던 몸이 따뜻해지는 듯 했다. 쿠로하라도 자연스럽게 토란조림을 젓가락으로 집어 들고는 그리운 맛이네, 하며 짧게 촌평했다. 마치 정말 그립기라도 했다는 듯한 태도다. 그러면서 후루야의 앞에 작은 USB 하나를 스윽 밀어왔다.
“자, 알고 싶어 했던 정보.”
후루야는 딱히 감사의 말이나 다른 미사여구 없이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었다. 작은 기계가 후루야의 손 안으로 사라졌다.
“럼이 이 동네에 꽤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은데. 네가 떠나지 않는 것도 그렇고 이 동네에 정말로 뭐라도 숨어 있는건가?”
계란말이를 잽싸게 해치운 쿠로하라는 잠시 식사에 열중하는 듯 하더니만 곧 평범한 세상 얘기를 꺼내듯 불쑥 그런 화제를 꺼내왔다. 뭐라도 숨어 있느냐고 하면 사실 한 둘이 숨어 있는게 아니기는 했다. 당장 후루야부터가 여기에 숨어있는 신세였으니까. 그 밖에도 후루야가 아는 것만 대체 몇 명인지 몰랐다. 그렇지만 그런 사실을 티낼 만큼 허술하지 않았기에 태연히 입을 연다.
“내가 여기에 있는건 조직의 명령으로…”
“모리 코고로? 글쎄, 지나가다 한 두 번 본게 다기는 해도 아무리 봐도 음침한 짓을 꾸밀 사람 같지는 않던데. …뭐, 이건 그냥 내 사견이고 다른 분들은 그렇게 생각 않는 모양이지만.”
쿠로하라는 거기서 한 호흡의 공백을 두었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여러가지로 동향이 이상해.”
여러가지라. 쿠로하라는, 테네시는 과연 어디까지 파악하고 있을까. 럼이나 베르무트는, FBI나 CIA는, 그리고 그 애는…
“곧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걸까? 어떻게 생각해. 버본.”
후루야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쿠로하라와 가만 시선을 맞췄다.
처음 테네시와의 거래를 알리자 카자미는 상당히 곤혹스러워하는 얼굴을 했다.
‘후루야 씨의 판단을 의심하는건 아니지만 솔직히, 믿어도 될 만한 인간인지…’
‘믿어도 될 만한 인간이라 이용하려는게 아니야. 그런 식으로 믿을만한 인간만 골라내려고 하면 대체 어떻게 일을 하겠어?’
‘하지만 지금은 중요한 시기입니다.’
‘그래서지. 하나라도 더 정보가 필요해.’
쿠로하라의 의심은 옳다. 얼마 후면 조직을 뿌리뽑기 위한 마지막 작업이 초읽기에 들어간다.
후루야가 경찰이 되기 전부터 이어져 온 기나긴 수사였다. 그 여정이 너무도 길고 깊어 한때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무력감에 흔들릴 때도 있었지만 그 모든 것들은 무의미하지 않았고 여지껏 해왔던 작은 싸움들을 토대로 곧 이제까지 없었던 큰 싸움이 벌어질 예정이었다. 패배하든 승리하든 어느 쪽으로 결말이 나든지 간에.
그럼 그때 쿠로하라는 어떻게 될까. 아직까지 후루야가 전부 죄질을 파악하지 못한 남자는.
언뜻 허술해 보이지만 조직의 간부인데다 베르무트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 두 해 몸 담은 것도 아닌 눈치였다. 조직이 계획대로 괴멸한다면 나중에 그를 단죄할지 이용할지 선택하는 것은 아마도 후루야의 몫이 될 터였다. 그들의 거래는 베르무트에 대한 것이지 쿠로하라에 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후루야는 그렇게 정의로운 방식으로 일하는 사람 또한 아니었고 쿠로하라는 이용가치가 있는 상대였다. 그 가치로만 판단한다면 얼마든지 풀어놓고 협력자로서 이용할만 했다.
그러나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죄라는 것도 있다. 법이 아닌 도의라는 몹시도 이기적인 기준으로.
그러니까 그때가 되면 후루야는 쿠로하라를 파헤쳐야만 했고, 그것을 자기자신의 기준으로 재단해야만 했다.
‘…믿어도 될만한 인간이 아니라면, 그럼 어떤걸 보고 이용하시려고 하는 겁니까?’
후루야가 허용할 수 있는 정도의 죄질을 가진 인간. 쿠로하라가 그런 인간이기를 바라는게 맞을지도 모른다고 후루야는 조금쯤 인정한다. 그것이 자기 자신을 위하는 마음일지도 모른다는 것도. 자신이 집에 들이고 연락을 주고받고 정 비슷한 것을 나눴던 상대였다. 그런 상대가 최악의 인간이기를 바라지 않는 것은 곧 자신의 사람 보는 눈을, 그런 인간에게 감히 편안함을 느꼈을 리 없다는 것을 믿고 싶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그 정도는 남아있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게 후루야가 간직한 자존심이었다.
‘하로가 마음에 들어 하잖아.’
후루야는 그렇게 말하고는 카자미의 표정을 보지도 않고 작게 웃었다.
‘농담이야.’
만약 이 잠입이 끝나면 자신에게는 무엇이 남을까.
카자미는 한때 살인자라고 자신을 비난했지만 그것은 경찰로서, 후루야 레이로서 더럽힌 손이었기 때문이다. 카자미는 후루야가 잠입의 일환으로 해야 했던 일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후루야는 자신이 경찰임을 잊지 않고 행동하려고 노력하지만 정말 가끔은 자신의 정체성을 잊어버리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때도 있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견뎌낸다는 시점에서 이미 자신은 돌이킬 수 없어진게 아닐까 싶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난 우리가 이길 거라고 믿거든.’
그런 후루야가 딱 하나 믿는 구석이 있다면 그것이다. 작게 웃는 후루야를 쳐다보지도 않고 있던 카자미는 이윽고 무언가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조직이 무너진다고 해도…’
카자미는 뜸을 들였다가 고쳐 말했다.
‘당신의 잠입이 끝난다고 해도 그게 끝을 의미하는건 아니잖습니까.‘
당연한 말이다. 후루야는 그 후로도 계속 경찰일 예정이었다. 이런 생각을 할 때도 있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전부 견뎌내고 전부 해내며 살고 있으니 이제와 공안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징징대는 소리도 못한다. 후루야는 우직하게 정의를 추구하는 형사보다는 그늘 아래서 암약하는 일에 대단히 소질이 있는 인재였고 자신의 일에 대해 자부심도 회의감도 남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느끼며 살고 있었다. 그렇지만 자신이 경찰학교 시절의 그 악동과는 다르다는 것도 아주 멀리 와버렸다는 것도 알고 있다. 돌이킬 수도 있었는지 처음부터 이렇게 될 운명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하나의 이름만 남았을 때 자신은 어떻게 뒤를 돌아보아야 할까.
만일 미친 척 할 수 있다면 후루야는 쿠로하라에게 대의 없이 거짓된 이름으로 살아가는 기분은 어떤 것인지 물어보고 싶기도 했다. 잘도 가볍게 정을 주고 다니면서. 언제든지 전부 정리하고 떠날 수 있는 주제에, 그런 성격을 가지고서도 그렇게 살아가는 기분은 과연 어떤 것인지를.
하지만 그럴 수 있을 리 없기 때문에 후루야는 태연하게 답한다.
‘그런건 나도 알아 카자미.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고개를 돌리자 카자미가 형용하기 힘든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후루야는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눈을 가볍게 깜빡인다.
‘…그렇지만 네가 나한테 그런 소리도 다하고 많이 컸군.’
“묵비권인가?”
그 목소리에 후루야는 순간 얕은 잠에서 깨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현실로 돌아왔다. 자신이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 자연스럽게 밥에 젓가락을 가져다대며 답한다.
“정보상이 되어서 그런걸 묻나요?”
“이런, 버본이 아니라 후루야 레이에게 물을 말이었나?”
“그렇다고 대답하면 어떡할 거지?”
후루야 레이는 그렇게 대답하기 무섭게 언제 자기가 딱딱한 경찰관처럼 말했냐는 듯 싱긋 웃었다.
“이제 와서 나와의 거래를 물릴 수도 없을 텐데요.”
“…그것도 그렇지.”
쿠로하라는 후루야의 그런 태도 따위 특별히 개의치 않는다는 듯 천천히 국그릇을 들고 된장국을 마셨다. 후루야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불쑥 물었다.
“그 여자도 이 마을에 꽤 신경을 쓰고 있죠.”
그 여자라고 말했을 뿐인데도 쿠로하라는 누구를 말하는 건지 단번에 알아들었다. 쓴 것을 씹기라도 한 마냥 입가가 일그러진다.
“몇 년 전부터인가, 가끔씩 나한테는 안 보여주던 얼굴을 하더라고.”
“안 보여주던 얼굴?”
“그래. 뭔가 중요한게 새로 생기기라도 한건지 원.”
그들 사이의 거래로 후루야는 이 남자가 베르무트를 아주 많이 신경 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보통 관계가 아닌 모양이다. 쿠로하라는 이왕 들킨거 아무래도 좋아졌는지 아니, 이제와 생각해보니 네가 베르무트가 데리고 다닌다던 그놈이었네… 질투나 죽는 줄 알았잖아. 하며 농담처럼 중얼거렸던 적도 있었다. 남녀관계 비슷한 걸까?
쿠로하라가 투덜거렸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도망치지 못한다면 그것 때문일거란 생각이 들어. 너무하지 않아? 대체 얼마나 특별한걸 마주쳤기에 그렇게 구는지. 그러니까 나도 여기저기 인연을 좀 쌓아놓을 수밖에.”
후루야는 베르무트의 그것이 누구인지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지만 대체 어떤 경위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작은 쪽이야 워낙 별별 일에 다 엮이니 또 무슨 짓을 저질렀겠거니 싶었으나 소녀 쪽과는 대체 어쩌다가 엮였나 싶었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그 베르무트마저도 그렇게 될 만한 가치가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베르무트가 사랑하는 것이 그런 인간이라는걸 알고 있는 입장에서는 눈앞의 남자도 조금은 안쓰럽게 보인다. 딱히 주는 만큼 사랑 받고 싶어 하는 부류는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그렇지 그 여자가 천사라고 부르며 애정하는 인간은 그들 같은 인간과 전혀 다른 별세계에 동떨어져 있는 듯한 사람이었으니까.
베르무트는 이 남자가 자신을 위해 그런 거래를 불사할 정도의 마음가짐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어느 쪽이든 후루야와도 버본과도 아무 상관없는 얘기지만.
문득 쿠로하라의 눈이 이쪽을 향한다.
“내가 가져다주는 정보가 어디에 써먹히고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지금 일어나는 일들을 주도하고 있는건 너인가?”
“…글쎄.”
대충 넘기는 듯한 대답이었지만 실은 또 그렇지만도 않았다. 자신이 중요하다는 자각도 있고 그럭저럭 권한을 가지고 있기는 해도 후루야는 어디까지나 전체 중의 일부였다. 일단은 지시에 따라 행동하는데다가 자신만큼 우수한 이는 몇 명 더 있다. 하나는 싫어하는 놈이고 하나는 애라 문제지.
“이쪽도 말단 중에 말단이라서.”
“너무 뻔뻔한 것 아냐?”
쿠로하라가 헛웃음 친 그 순간 먼저 저녁을 다 먹고 이리저리 쏘다니던 하로가 작은 발로 티비 리모컨의 스위치를 꾹 눌렀다. 두 사람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티비에서는 막 저녁 뉴스가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그 내용을 본 쿠로하라가 오, 하고 반응했다.
“잡힌 것 같은데? 아까 그 강도단.”
강도단이 체포되었음을 알리는 화면 속에는 리포터의 옆으로 자그마한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세 명의 아이들이 말갛게 웃는 채였고 그 뒤로는 남자애 하나와 여자애 하나가 서서 거리를 두고 그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어째 묘하게 관록이 묻어나오는 듯한 자세였다. 후루야는 그 두 아이를 뚫어져라 쳐다보지 않으려 의식적으로 노력해야만 했다.
“저 하이바라라는 아이 말이야.”
후루야와는 대조적으로 쿠로하라는 화면을 빤히 들여다보다가 불쑥 물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왜일까?”
후루야는 묵묵히 답했다.
“그 애는 내가 있는 쪽으로 잘 안와요. 낯을 가려서. 그러니까 잘 모릅니다.”
화면 속 두 아이는 모자로 얼굴을 감추고 있긴 했지만 둘 다 은근한 미소를 띄우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중요한 시기에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저러고 있는 것을 보고 있자면 고민도 없는지 묻고 싶기도 했으나 자신의 쓸데없는 생각 같은걸 저 애들에게 들이미는 꼴인걸 알기에 그러지는 않는다. 그래도 저 애들은 후루야를 포함한 사람들이 간직한 비장의 패였다. 컨트롤 해보려는 시도는 반쯤 포기했으니 좀 자진해서 몸을 사리면 좋겠다 싶다가도 하기사 그런 기특한 성격이었으면 비장의 패가 될 수도 없었겠지 싶어서 한숨 섞인 웃음이 나왔다.
“그건 그렇고 대단한 애들이네. 소년 탐정단이라고 했나?”
“만나본 적 있나요?”
“음, 지나가다가 한 두 번은? 그렇게 잘 아는건 아니지만. 포와로에서도 본 적 있던가?”
“괜히 친해지지 않는게 좋을 겁니다. 귀찮게 구는 애들이니까요.”
그러자 쿠로하라는 아주 뜻밖이라는 듯한 얼굴을 했다.
“넌 애들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어.”
“애들은 귀찮아요. …당신이 말했던 대로, 이 동네는 쓸데없이 사건사고가 많은 것 같기도 하고.”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이 화제는 달갑지 않고 후루야는 어떻게 해야 이 화제를 자연스럽게 넘길 수 있을지 궁리한다.
이래서 곤란한 거다. 일단은 협력자에 준하는 관계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경계를 풀어도 좋을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이미 거리를 떠난 상대를, 그것도 지금은 그의 정체를 알고 있는데도 이 거리까지 오게 한건 어쩌면 후루야의 실책일지도 모른다고 후루야는 처음 자신의 행동을 되짚어 본다. 이 남자를 어지간하면 저마다 하나씩은 비밀을 품고 있는 이 마을에 들여놓아서는 안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은 이미 무의식 중 어딘가에서 임시거주지일 뿐인 이곳을 자신의 영역으로 받아들여버린 모양이었다. 그때 이 영역에 머물렀던 것이 쿠로하라인지라 자꾸만 이 남자의 존재를 당연하게 생각하게 됐다. 따지자면 자신의 무리처럼 느끼고 있는 셈이다.
이런 속내를 읽혔다가는 영역동물이냐며 비웃음 당하겠군.
그런 후루야의 자조적인 속내를 알 턱이 없는데 쿠로하라는 이 화제를 이어가는 대신 불쑥 이상한 것을 물었다.
“너는 번역이 뭐라고 생각해?”
“쓰인 것을 다른 언어로 옮겨 적는 행위겠죠.”
“남이 써둔 말을 단순하게 옮겨 적는 걸로는 그 뜻을 전달할 수 없다니 웃기는 일이지. 제대로 이해하지 않으면 번역할 수가 없어.”
반사적으로 대답하자 쿠로하라는 더욱 뜬금없는 소리를 해대서 후루야는 눈을 찌푸렸다. 그러나 쿠로하라는 개의치 않고 조금 웃었다.
“내가 방금 네 말을 번역한다면 뭐라고 적어야 할까?”
그리고 후루야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한마디를 덧붙였다.
“넌 섬세한 편인 것 같아. 레이.”
아.
‘나는 이 사람이 내게 양보하기 때문에 이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거지.’
물론 그런 이유만은 아니겠지만 후루야는 자신이 느끼는 불쾌감의 이유를 그런 식으로 더듬는다. 이 경우에는 자신의 자존심이 허락치 않았다. 대놓고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이자 쿠로하라가 또 웃어서 더 열이 받았다. 옆집이 비기 전에는 자주 있었던 일이다.
이 짧은 순간이 끝나면 그들은 또다시 서로의 접점이라고는 없었던 것처럼 시치미를 뗄 예정이었다. 옆집 주민으로서 함께했던 시간 같은건 한여름 밤의 꿈인 듯, 전부 아무런 의미 따위 없는 시간이었던 듯. 곧 후루야의 잠입마저도 끝날 테고 그럼 이런 알듯말듯한 관계는 정말로 끝이다.
그렇지만 지금 결론짓기를, 조직이 괴멸한 그때 후루야는 쿠로하라를 법으로 심판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선을 지키는 관계여서 식사비를 받았던 것도 그렇고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서는 서로에게 가급적 뭔갈 건네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후루야는 아직 자신을 살린 것에 대해 쿠로하라에게 대가를 지불한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이건 그것에 대한 작은 보답인 셈이다.
후루야는 아직도 쿠로하라가 어떤 심경의 변화로 자신을 살렸는지 몰랐고 딱히 알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만한 일을 겪고 난 후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입을 싹 닦을 마음도 없다. 딱히 풀어준다는 것도 아니고 감시 하에 이용하겠다는 거지만.
물론 그것도 전부 이쪽이 승리한다는 전제 하의 이야기나 후루야는 질 것 같은 일에 걸지 않는다.
그러나 그때도 이런 관계일 수는 없을 것이다.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 허용되는 상대. 강아지를 보여주거나 사생활을 공유하는 사이 같은 것 말이다.
이 방에서 함께 밥을 먹는 것은 아마 정말로 마지막이 될 터였다. 결전은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고 이제는 아무로 토오루 또한 모든 것을 정리할 때였다. 이전의 쿠로하라 세이야가 그랬듯이. 이웃도, 예뻐하던 이웃의 강아지도 전부 없었던 일로 만들었듯.
후루야는 그때의 자신이 지금을 어떻게 추억할까 잠시 궁금해한다.
“그럼, 잘 먹었어.”
그런 복잡한 상념 속에 식사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이 지나 두 사람 다 깔끔하게 끝이 났다. 그렇게 인사한 쿠로하라는 미련이라고는 없다는 것처럼 깔끔하게 현관으로 가 신발을 신는다. 서운한 듯 쫓아 나오는 하로를 향해 잠깐 무릎을 꿇고 앉아 시선을 맞춰주었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후루야가 팔짱을 낀 채 지켜보는 앞에서 쿠로하라는 곧 몸을 돌려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규칙적인 발소리가 점차 멀어지다가 뚝 끊긴다.
그리고 누군가 있었던 것이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정적만이 남았다. 아직 설거지 하지 않은 식기들만이 이곳에 누군가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할 뿐이었다.
“그래 하로. 너만 여기서 착한 애구나.”
후루야는 서운한 듯 귀를 축 늘어트린 하로를 안아 올렸다. 그리고 복실복실한 털에 뺨을 가져다댔다.
“역시 영 마음에 안 드는 놈이라니까. 그렇지?”
이제는 날이 제법 쌀쌀했지만 몸이 아직 따뜻했기에 견딜 만 했다. 쿠로하라는 외투를 여미며 눈에 익은 거리를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었다. 알지 못했고 생각도 해본 적 없었는데 이전에 살던 동네에 놀러 오는건 꽤 좋은 일인 것 같기도 했다. 이곳저곳 정을 주었던 곳들을 보고 있자면 기분이 괜찮아지니까.
길을 걸으며 쿠로하라는 오늘의 만남을 돌이켜 본다. 후루야는 좀처럼 힌트를 흘리지 않았지만 어쩐지 느껴지는 위화감도 그렇고 자신에게 들어오는 정보들을 종합해 보건데 근 시일 내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일어나는게 확정된 듯싶었다. 역시 줄은 대놓고 볼 일이다. 조직의 괴멸은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으나 정말이지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난다면 후루야도 이곳을 떠날 것이다. 집도, 포와로도, 이 거리도 전부.
그 후로는 정말로 아쉬운 관계가 되려나. 쿠로하라는 심각한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그런 생각을 한다. 후루야와 그의 관계는 완전히 막을 내린 한권의 책처럼 닫힌 결말이 나버릴까. 지나고 나서 후회하지 않도록 충분히 정을 주었지만 저 방에서 보냈던 짧은 나날들이 정말 끝이 난다고 생각하면 역시 조금은 섭섭했다. 하로도 그립고.
“이 동네는 쓸데없이 사건사고가 많다, 라.”
만약 그것을 번역한다면.
“여기가 소중하다… 그렇게 되려나?”
쿠로하라는 그렇게 혼잣말 하고 피식 웃었다.
“이렇게 멋대로 번역하면 안 되는 거긴 한데.”
그렇지만 제멋대로인 오역이어도 딱히 상관은 없다. 누구에게 보여줄 것도 아니니까. 애초에 이건 같은 언어다. 번역의 뜻과는 맞지 않는다.
이윽고 쿠로하라는 베이커가를 떠나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열차는 굉음을 내며 발진하다가 이내 순식간에 역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쿠로하라는 차창 밖으로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거리를 본다. 그 빛들이 늘어지고 길어지다가…
“맛있었다.”
중얼거림과 함께 터널 속으로 훅 집어삼켜졌다. 일탈의 끝이었다. 밤의 주민들은 밤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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